Bible Materials

The Glory of Jesus, God Incarnate

by Eberhard Gross   08/04/2023   John 1:1~14

Message


요한복음 1:1-5, 14(6월 10일)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의 영광

핵심 구절: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영광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어떤 것이 비교할 수 없고, 아름답고, 위대할 때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 어떤 사람들은 속도 제한 없이 독일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길었던 CoViD 판데믹 이후 이곳 컨퍼런스에서 전 세계에서 온 구속받은 하나님의 많은 자녀들을 보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맥락에서 영광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서 영광이란 이 땅 위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이 영광은 생명을 손에 쥐고 계시는 이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 가운데 거하기 위해 내려오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버지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 온전히 발견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될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싶으십니까?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1-3)

1-3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저자 요한은 헬라어로 '로고스'인 '말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당시의 철학에서 로고스는 만물에 편만한 신성한 세계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인격적이었습니다.

이 로고스에, 요한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체를 지정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 안에서 그들의 삶이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당시의 세상에 알렸습니다.

다시 1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은 태초에 이미 계셨습니다.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오셨고, 얼마간 우리 가운데 거하셨으며, 이제 그의 영원으로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이를 거듭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18)

사도 도마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못자국을 만졌을 때, 그는 예수님의 영광을 알아보고말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도마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선생이나 위대한 인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16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라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집은 영원합니다.

그의 능력은 창조주의 능력입니다.

그는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것이없느니라”

예수님은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그가 없이는, 만들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푸른 풀, 아름다운 꽃,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같은 창조의 화려함과 장엄함을 볼 때 예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올해 시카고에서 저는 처음으로 카디널(홍관조)을 보았습니다.

와우, 독일에서 본 적이 없는 참으로 아름다운 빨간새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생애를 공부할 때 예수님이 곧 창조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누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까?

날때부터 소경 된 사람의 눈을 누가 그 입의 침으로 뜨게 할 수있습니까?

누가 죽은 자를 살릴 수있습니까?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세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만드신 특별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귀한 아들과 딸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의미입니다.

어느 날 한 젊은 여성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를 찾아 예배에 왔습니다.

그녀는 창백하고 지쳐 보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매주 나왔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훨씬 나아보입니다.

그녀의 눈은 빛이 납니다.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녀를 참으로 좋게 만드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앎으로써 그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통해, 그리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를믿으십니까?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4-5)

4-5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실제로 생명은 무엇입니까?

육신의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고 건강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이러한 종류의 생명을유지합니다.

정신적인 생명도 있습니다.

CoViD 기간 동안 외로움, 전염에 대한 두려움, 대책에 대한 의견 불일치 등 많은 정신적 문제가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생명이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을 뜻하는 헬라어는 '조이'입니다.

Zoe라는 이름은 우리 사역의 Zoe Keller 또는 Zoe McEathron과 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딸들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은 자녀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기를 바라는 소망의 표현입니다.

조이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낙원에서 하나님과 분리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영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저주받은 세상에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먹고 사는 존재가 되어 결국은 곤한 인생을 마감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조이의 생명을 잃어버렸지만, 그것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그늘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시기 위해 천국을 떠나셨고, 그와 함께 영생을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다시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생명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살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분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불멸의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믿으면 우리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생명을 소유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4-5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둠으로 묘사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세상은 어둡습니다.

예를 들어, 죽음이 끝이라고 믿는 사람은 어둠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그는 희망 없이 삽니다.

그는 가능한 한 인생을 즐기기를 원합니다. 그에게 인생은 짧기 때문입니다.

그의 어두움은 술을 많이 마시거나 마약을 복용하거나 음란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 어둠 속에서 고군분투합니다.

이 어둠 속에 어떤 희망이 있습니까?

예, 터널 끝에서 우리는 빛을 봅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납니다.

점점 그 빛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지만 이 빛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빛이 너무 강합니다.

어떤 쾌락 중독도, 어떤 정체성의 위기도 그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영광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이기지 못하더라 아멘!

이 빛을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14)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은 이제 14절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까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것을 그의 눈으로 보게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더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권리를 주장하고,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소박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Amazon을 설립하면서 사실상 식당 접시닦이에서 억만장자로 수직상승한 Jeff Bezos의 이야기와 같은 전기를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경향을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때, 그는 하나님 안에서 매우 다른 성품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명성과 권세와 위엄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 반대였습니다. .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생명의 충만이 감추어져 있는 이가 그 나라를 떠나 나사렛 예수의 모습을 한 보통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십니다.

그의 임재 앞에서 우리의 입술은 숯불에 타듯이 타오릅니다.

이 하나님이 하늘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오셔서 자신을 타락한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의 낮아지심을 이와 같이 선포했습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는 본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부릅니다.

무슨뜻입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여기서 육체란 죄의 저주 아래 사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이와 같은 죄인의 모양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보다 더한 굴욕이 있습니까?

우리를 향한 이보다 더 큰 사랑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한번은 아내와 함께 대서양에서 수영을 하러 갔습니다.

나는 그녀가 파도와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더 이상 아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즉시 저도 위험한 파도 속으로 헤엄 쳤습니다.

저는 통제력을 잃고 물에 삼켜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를 잔잔한 물결로 끌어당기는 소용돌이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다시 찾았습니다.

왜 내 목숨을 걸었습니까?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이 있었지만 그녀를 구할 힘은 없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비록 우리 모두가 교만하고 반항적인 죄인일지라도 예수님은 하늘 궁전을 떠나 인간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셨습니까?

답은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우리 각자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의 귀한 신성한 생명을 포기하시고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저는 사랑은 있었으나 아내를 구할 힘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할 사랑과 전능한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사셨습니다.

제가 팔복 교회를 방문했을 때 감격에 휩싸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들도 갈릴리 바다를 내려다보시며 산상설교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을 자주 방문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만지셨던 성전의 큰 돌들을 만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황홀한 영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분이 이 땅에서 내딛으신 모든 발걸음과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은 에메랄드처럼 귀하고 태양빛처럼 순수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이 세상의 영광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포스팅을 하기위해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어떤 사진도 찾지 못합니다. 그의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만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기적을 행할 수 있다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프랜차이즈 회사를 차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이 세상의 주인이면서도 가난한 삶을사셨습니다.

예수의 영광은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죄인을 섬기고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겸손하신 하나님께 감동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그는 야망이 너무 커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 옆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그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요한은 항상 예수님의 가슴에 눕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그의 원수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아주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우러러볼 때 우리는 대서양과 태평양과 같은 은혜와 진리의 바다를 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정죄를 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도 발견합니다.

2017년 저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대한 엄청난 피로감과 무관심에 짓눌렸습니다.

저는 우리 모임의 어떤 경향들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내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았습니다.

직장과, 가족과, 친구와, 취미등 모두 옹졸한 자기중심적인 삶에 다시 빠져들었습니다.

저의 마음에는 또 다른 영광, 곧 세상의 영광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성경 공부를 통해 잃어버린 세상의 드라마와 곧 다시 오실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알프스를 하이킹하는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향한 제 마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 삶에 비전이 필요한 젊은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부흥의 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쾰른 UBF에 있는 그분의 교회를 책임감 있게 돌보도록 저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제가 저의 취미와 다른 활동들 가운데 일부분을 포기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섬기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환경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수 많은 예수님의 숨겨진 제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찾은 청년이 믿음의 여인과 결혼하고 그의 은사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고 제 인생의 중요한 단계에서 저를 찾아와주셨습니다.

저는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그의 영광이 제 삶을 정의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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